'놀면 뭐하니' 유재석의 변신, 그리고 일자리의 변화

무한도전 종영후 1년의 휴식후 김태호 PD가 토요일 저녁에 론칭한 프로그램이 놀면 뭐하니다.

과거 무한도전은 유재석을 필두로, 박명수 정준하 하하, 정형돈이 나가고, 광희, 조세호, 양세형 등이 집단으로 출연하는 고전적 포맷이었다. 이 포맷은 1박2일, 런닝맨 등 수많은 예능 프로그램의 정석이다.

그런데 놀면뭐하니는 유재석만 고정이고, 나머지 멤버와 포멧은 매주 가변적인 새로운 시도를 한다. 드럼을 치는 유플래쉬, 트로트가수가 된 뽕포유, 최근엔 라섹으로 변신한 인생라면까지 유재석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얼만전 인생라면 편에서 정준하와 박명수가 나왔다. 고정이 아니라 한 명의 게스트로 참석한 것이다. 두 명 모두 오랜만의 토요일 저녁 출연에 낯설지만 기대가 큰 표정이었다.

생각해보니 다른 프로그램들에서도 이런 변화가 보인다. 강호동이 혼자 진행하는 라끼남.

나영석 피디도 1박2일, 꽃보다 할배, 윤식당, 신서유기 시리즈등 집단예능, 관찰예능이 주특기인데, 이번에는 강호동 한 명만 데리고 방송을 만든 것이다.

이건 사회적 변화를 예민하게 반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아주 뛰어난 1인이 필요하고, 그외의 중간역할을 하는 사람은 고정이 아니라 아주 유동적이고 비정기적인 자리만 주어질 뿐이라는 것. 중간역할에 특화된다면 그게 기회가 될 수 있지만 아닌 경우 고용불안정을 경험한다. 그리고 1인자가 된 사람은 훨씬 많은 것을 가져갈 것이다. 무한도전에서 유재석의 역할이 1/2은 되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90%가 아닌가?

최근 미국의 일자리 변화에 대한 글을 본 기억이 떠올랐다.

미국 mit 대학 데이비드 오터, 프랭크 래비 등이 제시한 ‘루틴화 가설’ , ‘업무변향기술발전 가설’이 있다. 루틴으로 반복되는 일은 IT로 자동화가 가능해지면서 사무자동화로 투자하고 고용을 줄이는 방향으로 대기업의 투자가 달라지고 있다.즉 이런 숙련도가 중간 정도만 필요한 일은 IT기술혁신으로 빨리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반면 고위관리자, 연구직, 고부가가치 서비스직과 같이 IT로 대체되기 어려운 자리의 고용은 줄지 않는다. 역시 IT로 대체하기 어려운 단순한 일도 영향을 받지 않는 임금과 고용의 U모양이 발생. 직업특성의 변화가 발생한다. 실제 1997-2007년 사이의 일자리 변화를 보니 사무직, 판매, 생산 ,설비조작 직업군은 일자리가 줄었다. 반면 관리, 전문, 기술직은 증가했다. 또 반면 경비, 요식, 대인돌봄서비스와 같은 저숙련 서비스는 증가하는 경향이 보였다.





방송일을 직장이라고, 무한도전과 같은 좋은 프로그램을 대기업 일자리라고, 또 고정을 정규직이라고 한다면, 이제 유재석만 정규직이고, 나머지는 모두 비정규직이 된 것 아닌가? 긱 경제가 좋기는 하지만 노동자를 갈아넣는 것이 있듯이, 이들은 언제나 유동성이라는 이름으로 불안정성에서 살아야한다. 매번 개편때마다 고정이 몇 개 지속될 지 고민하는 것이 방송인들이다. 이들에게 고정프로그램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갈수록 환경은 아주 뛰어난 1인을 중심으로 두고, 나머지는 언제나 유동적으로 하는 것을 선호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지금은 두 프로그램 뿐이지만, 앞으로의 방송트렌드와 사회의 환경도 그럴 것으로 보인다.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그저 유재석을 많이 봐서 즐거운 마음으로 웃으면서 보기가 힘들었던 이유다. 우리 사회의 지금, 아니 몇 년후가 투사되어 보였기 때문이다.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오르기 위해 1%가 되기 위해서 교육에 그래서 더 많은 투자가 일어나고 있다. 일자리의 양극화가 일어난다. 중간정도의 교육을 받고, 중간정도의 숙련도로 안정적으로 은퇴할 수 있는 일자리는 아주 급격히 줄어들고 있고, 이들이 은퇴해도 그 자리는 메꿔지지 않기 때문에 한정된 자리를 놓고 경쟁에 대한 압력은 급격히 올라가고 있는 것이다. 그 불안을 누구보다 잘 느끼고 있는 사람이 바로 그 자리에 있는 한국사회의 60년대생 대졸자 중산층이다. 자신의 자리를 물려주기 위해 지나치게 애를 쓰다 사회적 공분을 사게 된 것이 바로 조국 사태인지 모른다.

​TV프로그램이 우리 사회의 변화를 참 예민하게 반영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오디오클립으로..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2625/clips/53

상황이 긴박할수록 시간은 더디게 간다고 느껴지는 이유

상황이 긴박하게 느껴질 수록 당장 해결해야한다 느껴지고, 시간이 더디게 간다고 느껴진다. 그럴수록 의도적으로 지켜보며 사안을 홀딩해 보는게 능력이다.

하지현의 하트 /네이버 오디오클립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2625/clips/55

응급상황에 대비해 마음의 빈공간을 확보하자

미주리 주 세인트존스 병원에서 있었던 일.

연 3만건의 수술을 32개 수술방에서 시행하는데 2002년 수술실 100퍼센트 가동 하는 중에 응급환자가 오면 예정된 수술을 미루고 수술하게 되는데, 20퍼센트나 되었다. 그러다보니 새벽2시에 수술을 하기도 하고, 2시간짜리 수술을 하느라 의사들이 몇 시간을 기다려야했고, 직원들의 추가근무 수당등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했따.

이 문제의 해결은 수술장을 늘리는 게 아니라, 수술실 하나를 완전히 비우라는 처방이었고, 그 방은 무조건 응급수술에만 이용하도록 했다. 그러면 수술장 전체의 갯수는 하나가 주는 것인데도, 긴급상황에 따른 재배정을 하지 않게 되자, 수술실은 곧 모든 수술을 감당할 수 있게 되었다. 수술실 부족은 수술공간의 부족이 아니라 긴급상황 대처할 능력이 부족했던 것이다. 이런 처방을 처음에는 모두가 반대했다 .말도 안된다고..

busy operation room 이미지 검색결과

응급수술을 위한 방 을 확보하는 정책을 시행하자 수술건수가 5.1% 증가했고 새벽 3시 이후 수술이 45%감소했고 그만큼 병원 수익도 개선되었다. 결국 2년후에 수술건수가 매년 7-11% 도리어 증가했고, 과거에는 이런 일이 벌어질까봐 주초에 수술을 하려던 의사들이 수술장 분포도 일정해졌다.

=결핍의 경제학 중

결핍의 경제학 이미지 검색결과

이를 마음의 운영에 적용해보자.

우리는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 대비해서 적극적으로 마음의 여유공간을 확보해야, 일상의 루틴의 균형이 깨지지 않는다.

꽉 채워서 지내면 응급수술과 같이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면 모든 루틴의 틀이 흔들리면서 전체적 균형이 깨지기 쉽다.

일부러 공간을 확보해서 응급으로 벌어지는 상황에 이용할 공간을 확보해둬야 전체의 균형을 깨지 않고 일상을 지켜낼 수 있는 것이다.

​더 자세한 내용은 ‘하지현의 하트’에서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2625/clips/57

나이가 들면 어려운 사람이 된다

나는 전공의들과 가깝게 지내려 하는 편이다. 회진을 할 때는 엄격하지만, 그 외의 시간에는 최대한 편안하게 하려 노력해 왔다. 가급적 시간을 내서 저녁 식사를 함께 하면서 스트레스를 줄여 주려고 했다. 서로 소소한 일상을 나누고 이야기하며 더욱 관계가 친밀해질 수 있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분위기가 달라진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회진을 할 때 언짢은 소리를 할 수밖에 없을 때가 있다. 이때 잔소리의 강도에 비해 듣는 전공의의 얼굴 표정은 훨씬 굳어 있고, 어떨 때에는 사색이 돼 있는 것이 관찰됐다. 저녁에 소주 한잔을 할 때에 예전에는 신나게 떠들던 친구들이 요새는 내가 대화를 이어 나가지 않으면 묵묵히 앉아 있거나 겨우 맞장구를 치는 정도였다. 처음엔 긴장을 많이 하는 전공의가 들어 왔구나 싶었는데, 몇 년이 지나도 분위기는 그대로라 개인의 성격만은 아니라는 것을 짐작했지만, 똑 떨어지는 원인은 찾기 힘들었다.

의문이 커지고 있던 중 우연히 배우 김의성이 어떤 매체와 한 인터뷰를 보게 됐다. 내용은 이렇다. 그는 30대에 10년 동안 베트남에서 사업을 하다 돌아와 다시 연기를 시작해 어느덧 50대 중반의 중견 배우가 됐다. 언제나 젊은 마음으로 살고 싶어서 나이 어린 후배 배우들이나 현장 스태프들과도 격의 없이 지내려고 노력을 해 왔다고 한다. 그렇게 하는 만큼 사람들이 다 자신을 좋아해 줄 것이라 믿었고, 대중의 사랑도 그런 태도에서 왔다고 여겼다. 그런데 현장에서 생활하면서 그는 어린 현장 스태프들을 아무리 편하게 대해 준다고 해도 의도와 상관없이 현장에서는 ‘강자’의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강자와 약자의 관계가 된 순간 약자가 나를 좋아할 것이라는 기대 자체가 오만한 착각이고, 열려 있는 태도를 갖는 것은 좋지만, 사람들이 나를 어려워할 수 있겠다는 가능성 또한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토로했다. 그들과 친구가 되고 싶지만, 그들이 나를 친구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걸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아, 그랬던 것이다. 내 열린 태도나 상대에 대한 호의와 상관없이 이미 나이가 꽤 든 어른이라 그쪽이 나를 볼 때에는 기본적으로 어려운 존재가 돼 버린 것이다. 그걸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생각해 보니 처음 교수가 됐을 때 나와 그들의 나이 차이는 열 살 남짓이었다. 아마, 큰형이나 작은삼촌 정도로 보였을 것이다. 매년 새로 들어오는 전공의는 같은 나이로 들어오는데, 나는 나이를 먹어 가고 50대가 됐다. 어느 순간 그들의 부모 나이 쪽에 더 가까운 사람이 된 것이다. 만만한 삼촌을 대할 때와 아버지를 대할 때는 엄청난 질감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을 텐데, 나는 여전히 오픈 마인드로 대하며 친근하게 대하고 있다고 혼자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나이와 직급 자체로 태도로는 넘을 수 없는 강한 존재가 돼 버린 것이다. 그 결과 약자일 수밖에 없는 전공의들에게는 무시하기 힘든 위력이 작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떨 때에는 가까워지려는 시도도 불필요하고 원치 않는 침범으로 느껴질 수 있었던 것이다.

둘러보면 나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세칭 586세대가 한국의 주류로 꽤 오랫동안 자리를 잡고 있고, 사회가 성숙기에 접어들면서 물갈이는 쉽지 않은 상태이다 보니 나이가 꽤 들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사람이 꽤 많다. 격의 없이 사람들을 대한다고 보지만, 막상 이들을 대하는 청년들의 눈에는 ‘젊은 척하는 꼰대’로만 보여지거나, 애를 쓰지만 안쓰러울 뿐이라고 볼 뿐 호의로만 느껴지지는 않을 수 있다.

특히 열린 태도로 젊게 살고 있다고 자부하는 중장년일수록 착각 속에 살고 있을 가능성을 하루빨리 돌아봤으면 한다. 젊은 후배들이 거리를 둬도 그런가 보다 하고, 상처받지 말고 관계의 거리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나이 든 선배로서 해야 할 일만 해야 한다. 나서는 대신 겸손하게 기다리고, 조언을 가장한 참견 하지 않기, 일을 맡긴 후에는 뒤돌아보지 않기를 실천했으면 한다.

내 태도나 노력과 상관없이 시간은 흘렀고, 어느덧 나는 강자가 돼 있는 걸 부정할 수 없다. 그걸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나부터 바꿔 보려 한다.

하지현

포기할 줄 아는 용기

수학능력시험이 한 달 남았다. 매년 이맘때 진료실에서는 수능 원서를 넣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의외로 20대 중후반이 많다. 이미 여러 번 재수를 했거나, 괜찮은 대학교에 다니고 있다. 조금 더 했으면 좋은 대학에 갔을 것이라는 미련이 사라지지 않아 가을만 되면 입시가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다. 다른 걸 해볼까 생각해 봐도 그래도 제일 오래 해보고 익숙한 게 수능 공부라고 말한다. 이들의 특징은 자신의 가치와 다니고 있거나 가고 싶은 학교를 동일시하는 경향이다. 지금 우울하고 생활이 만족스럽지 않은 제일 큰 이유를 입시의 실패로 본다.

열기가 전보다 덜하지만, 매년 신춘문예 시기마다 응모하는 문학 지망생들이나 사법고시 시절 고시촌에서 10년 넘게 살며 트레닝복과 물아일체가 됐다는 전설의 장수 고시생들도 떠오른다. 공통점은 포기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불굴의 의지로 끝까지 노력해 결국 성공했다는 사전오기의 신화가 우리 모두의 마음에 각인돼 있다. 자발적으로 노력하는 한 한국의 문화에서 차마 “이제 그만하자”고 말하지 못한다. 더욱이 그랬다가는 그동안 들인 시간과 에너지를 고스란히 손해로 인정해야 한다. 경쟁이 심한 사회에서 치명적이라 느낄 만하니 더욱 포기하지 못한다.

여기에는 자존감과도 연관이 있다. 짐작건대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 포기하지 않을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캐나다의 심리학자 애덤 디 폴라는 자존감이 높은 군과 낮은 군으로 나눠 어려운 추론 문제를 풀게 했다. 참가자들이 꽤 어렵다고 느낄 만한 문제였고, 한 세트가 끝날 때마다 실제와 상관없이 성적이 하위 3분의1이라고 알려 줬다. 이후 다음 세트를 더 해볼지, 아니면 추론 문제를 그만두고 창의성 문제라는 다른 주제로 바꿔 볼지 선택하라고 했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은 한 번 실패했을 때에는 다시 해보겠다고 했지만, 반복해서 낮은 점수를 받자 다른 주제로 넘어가겠다고 결정하는 비율이 자존감 낮은 사람보다 높았다.

반면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여러 번 실패해도 여전히 추론 문제를 재시도하는 걸 선택했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주어진 과제에 대한 동일시 경향이 낮았다. 행동의 목표가 타인의 평가보다 자신이 선택하고 잘하는 것을 찾는 것이었다. 그래서 한 번 실패를 하면 다시 시도를 하지만, 여러 번 반복해서 실패하는 경우 ‘아 이건 나와 맞지 않는구나’라고 판단하고 어렵지 않게 그 과제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주어진 과제가 나란 사람을 구성하는 정체성의 핵심과 동일시된 것은 아니니, 그 과제에 실패한다고 해서 나란 사람의 핵심이 흔들리거나 훼손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난 왜 이것밖에 못하지? 사람들이 날 얼마나 우습게 볼까?”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이런 수치심을 느낄까봐 다른 과제로 쉽사리 넘어가지 못한다. 어렵다는 것도 알고, 잘 못한다는 것도 알지만, 일단 여기서 기본은 해서 외부의 나쁜 평가를 받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최우선이 된다. 그래서 실패를 거듭하는데도 포기하지 못한다. 불굴의 의지 같지만, 실은 대책 없이 반복만 하고 있으면서 부정적 감정만 차곡차곡 쌓여 간다.

포기의 용기가 필요한 이유다. 끝없이 매달려 있는다고 고진감래의 날이 오기보다 그저 그런 성적표만 내 앞에 놓여 있을 가능성이 더 높다. 마음 안에 반복된 실패로 인한 열등감이 어느새 중심에 단단히 자리잡아 버린다. 자존감이 낮으니 반복된 실패에도 제자리에 머물러 있고, 그 결과 자존감은 더 떨어지는 악순환만 남는다.

어느 한계를 정해 놓고 그때까지는 최선을 다해 보지만, 아니다 싶은 순간이 오면 손해를 직면하더라도 과감히 포기를 선언하는 마음가짐은 어떨까. 과한 동일시를 하지 않는 한 실패를 인정하고 포기한다고 삶의 코어는 훼손되지 않는다. 좋은 점은 반복되던 고통을 더이상 느끼지 않아도 되고, 새로운 일이 내 재능과 합이 맞는 걸 발견할 의외의 기회가 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잘 못하는 것에 매달려 있다가 새 일을 시작할 에너지조차 남지 않게 소진돼 버리기 전에 포기할 건 포기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오랫동안 나를 지켜내 줄 용기라 생각한다.

불굴의 의지란 없다. 한 번 쏘면 소진된다

불굴의 의지로 극복하라는 말은 뇌과학을 이해하면 쓸 수 없을 것이다. 의지력의 고갈을 다룬 재미있는 실험을 소개합니다.

한 번 터보를 쏘듯 의지력을 발휘하면 유혹에 약해 바로 넘어가기 쉽다.

Psychol Sci. 2000 May;11(3):249-54.

Self-regulatory failure: a resource-depletion approach.

Vohs KD1, Heatherton TF.

Author information

Abstract

Three studies were conducted to test the behavioral consequences of effortful self-regulation. Individuals with chronic inhibitions about eating were exposed to situations varying in level of self-regulatory demand. Subsequently, participants’ ability to self-regulate was measured. Two studies manipulated self-regulatory demand by exposing participants to good-tasting snack foods, whereas a third study required participants to control their emotional expressions. As hypothesized, exerting self-control during the first task led to decrements in self-control on a subsequent task. Moreover, these effects were not due to changes in affective state and occurred only when self-control was required in the first task. These findings are explained in terms of depletion of self-regulatory resources, which impairs successful volitional control.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2625/clips/21

서가 정리란 취향 확인하기

“책 좀 어떻게 하지?”

아내가 서재로 쓰는 방을 둘러보며 하는 말. 살짝 계면쩍게 웃으며 둘러보았다. 책 좋아하는 정신과 의사이며 저자이기에, 책을 사들이는 건 저술을 위한 일이라 정당화하기에 공간은 빅뱅 직전의 임계점에 도달했다. 남들이 볼 때 혼란의 아수라장이겠으나 내 나름 체계적 분류로 나는 모든 책의 행방을 알고 있다. 새로 입수한 책은 책상 위에 쌓이고, 읽고 난 다음 보존 가치가 결정된다. 적잖은 통찰을 줬거나, 줄을 긋고 메모한 책은 명예의 전당이라 이름 붙인 하나의 서가로 이동한다. 이곳은 프로야구 1군 엔트리가 정해져 있듯 하나가 들어가면 하나는 나오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오랫동안 들춰 보지 않은 책은 새 책에 자리를 내주고 카테고리별 서가로 옮겨진다. 한편 평범하지만 소장할 책은 일반 서가로 가는데, 꽉 찬 지 오래라 서가 사이 빈틈에 옆으로 쑤셔 넣거나 바닥에 쌓인다. 1년에 100여권의 책이 흘러 들어오고 나가는 책은 적으니 결단의 순간은 주기적으로 오게 된다.

바로 지난 주말이었다. 아무 일 없는 일요일 오후 크게 심호흡을 하고 서가를 둘러보았다. 솔직히 버릴 책은 한 권도 없지만 매의 눈으로 과감히 뽑아냈다. 몇 년 동안 꺼내지 않은 책, 시효가 지난 트렌드서, 읽지 않을 소설과 에세이가 타깃이다. 여기까지는 꽤 빨랐지만 그다음부터 한 권씩 꺼내 들춰 보며 바닥에 주저앉아 옛 생각에 잡혀 있기 일쑤다. 10대에 읽었던 책 가운데 여러 번 이사에도 살아남은 애들은 차마 버릴 수 없어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무라카미 하루키같이 좋아하는 작가의 책은 에세이나 인터뷰도 전작주의적 관점에서 단 한 권도 버릴 수 없게 되고, 다른 서가에 꽂혔던 책들이 자기 자리로 옮겨져 볼륨은 더 커진다. 결국 이제는 관심이 줄어든 영역의 책들이 다음 차례로 서가에서 방을 뺀다. 땀흘려 확보한 공간에는 바닥에 쌓여 있던 책들이 자리를 잡는다. 월세방을 전전하다 안정적 보금자리가 생긴 사람의 표정이 꽂힌 책에서 느껴진다. 200권 가까운 책들의 자리바꿈과 함께 작업이 얼추 끝났다. 돌아보니 듬성듬성 빈자리도 보이고, 새로 꽂아 놓을 자리도 보인다.

마치 산에서 하는 작업과 같았다. 나무가 너무 빡빡하게 심어져 있으면 어느 이상 크게 자랄 공간을 갖지 못해 다 고만고만하게 자라다 멈춰 버리고 고사해 버리기 일쑤다. 이를 막기 위해 사이사이 잡목을 잘라 내 공간을 만들어 내는 작업을 해야 한다. 문제는 무엇이 좋은 나무고, 무엇이 잡목인지 구분하는 것이다. 책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타인에게는 최고의 책이 내게는 잡목과 같은 책이다. 취향의 문제다. 솎아 낸 책들과 살아남은 책들을 돌아보면서 내 취향이 무엇인지 확연해졌다. 평소 잡독가에 질보다 양을 선택하는 타입이지만 이런 과정을 거치며 내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알게 됐다. 적당히 안 본 책이 없는 듯 트렌디한 책을 얼추 읽었지만, 정작 끝까지 마음에 두는 주제는 넓지 않은 편이었다. 내 취향에 맞는 경우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나온 주요한 책은 거의 갖고 있었다.

이건 우리의 취향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자기 취향을 드러내는 것을 꺼려하는 경향이 있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신경쓰면서 무난한 선택을 반복한다. 그런 것들이 쌓여 나가면 어느 순간부터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헷갈려 버릴 위험이 있다. 이때는 솎아 냄이 필요하다. 시간이 지나면 내 취향에 맞는 책과 아닌 책을 가를 수 있듯이 시간이 얼추 지나고 나면 타인의 평가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진짜 내 눈으로 대상을 판별해 낼 수 있다. 이 과정을 거치고 난 다음에 비로소 내 취향이 남고, 결과물을 보면서 그제서 일상에서 인식하지 못했던 나란 사람의 정체성의 본질을 인식할 수 있다.

나란 상식이란 바탕 위에 취향이란 디자인으로 만들어진 복합물이다. 책뿐 아니라 옷, 음악, 그릇과 같은 물건들로도 가능한 작업이다. 주기적 솎아 냄으로 새로운 공간이 만들어지고, 가려져 있던 내 취향은 자기 자리를 잡을 수 있다. 이것이 내가 나를 이해하는 과정이다. 돌이켜 보니 서가에서 95%의 확률로 살아남는 건 언제나 만화책이다. 차마 버릴 수 없었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