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감의 스펙트럼을 넓히자

아내가 감자볶음을 만들었다. 아들이 한 입 먹더니 “이건 아빠 입맛에는 안 맞을 거 같아요. 더 단단한 걸 좋아하셔”라고 말해 한 젓가락 먹어 보았는데 맛있었다. 괜찮다고 말하자 “아, 맞다. 아빠는 감자로 만든 건 다 좋아하지.”

감자볶음을 우물거리며 생각해 보니, 나는 어릴 때부터 감자로 만든 것은 다 좋아한다. 감자조림도 좋아하고, 양식에는 매시드 포테이토가 있으면 좋고, ‘사라다’에 네모난 조각이 감자면 기쁘고 사과면 슬프다. 생선조림에서 생선 밑에 무가 깔리는데 병어조림만은 감자라 행복했다. 결국 난 감자로 만든 건 아주 이상하지 않는 한 다 맛있다.

그 반대는 가지다. 가지로 만든 것은 거의 다 내키지 않는다. 가지무침의 물컹거리는 식감이 싫다. 남들은 나이 들면 맛을 들인다는데 난 여전히 어쩌다 한 입은 먹어도 손이 쉽사리 가지 않는다. 가지 위에 된장을 발라 구운 요리를 먹어 보았다. 개중 먹을 만했지만 찾아가서 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이 경우 대부분 별로이고, 특출하게 맛있어야 견딜 만한 수준이 된다.

둘을 비교해 보니, 나는 호감이냐 비호감이냐에 따라 매우 다른 스펙트럼의 잣대를 갖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감자 같은 것은 호감의 스펙트럼이 아주 넓다. 웬만하면 ‘괜찮다’에 속하므로 호감에 들어갈 비율이 90% 이상이다. 진짜 이상할 때에만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반면 가지 같은 것은 호감의 스펙트럼이 매우 좁다. 재료가 아주 좋거나, 조리방법이 좋지 않는 이상 호감이 되기 어렵다. “아, 가지도 먹을 수 있구나” 정도이지 “와, 맛있다”의 영역은 가기 어렵다. 여기서는 최상위 10%만 만족의 영역에 속할 수 있는 매우 좁은 스펙트럼을 갖는다. 평소 호감이 없으니 접할 기회도 상대적으로 적고, 그러니 경험의 스펙트럼을 넓힐 기회는 더욱 줄어든다. 시간이 지날수록 호감과 비호감 사이에 만족의 문턱 차는 커질 수밖에 없다.

호감을 갖고 보는 사람의 행동은 대부분 괜찮아 보이고 못해도 실수로 받아들이지만, 비호감인 사람의 행동은 잘해야 본전, 못하면 ‘역시나’인 것과 같다. 물건에 대한 취향도 까다로운 것이 나쁜 건 아니다. 좁고 깊게 좋아하는 것만 파고드는 것은 권장할 만한 일이다. 그렇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만 보면 남들의 스펙트럼도 그럴 것이라 착각하기 쉽다. 스펙트럼의 개인 차가 존재하며 내가 좋아하는 것이 타인의 비호감 스펙트럼으로는 편치 않은 물건이나 행동일 수 있다는 걸 잊는다. 그런데도 우리는 내 호감의 스펙트럼 안에서 까다로워진 취향을 타인에게 자랑하거나, 반쯤 억지로 권할 때가 있다. “이렇게 좋은 걸 왜 싫어해?” 여기에 반쯤은 나의 숙련된 취향을 과시하고 싶은 문화적 우월감도 한몫한다. 멋진 사람이 재수 없어지는 건 순간이다. 이를 피하기 위해 그 차이의 존재를 민감하게 인식하고, 누군가에게 내가 좋아하는 걸 권할 때에는 이런 스펙트럼의 차이를 먼저 감지해야만 할 것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자. 내 취향으로 고를 수 있는 눈이 생기고,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면 싫어하는 것을 취할 이유가 없으니, 최대한 피하게 된다. 뇌는 좋은 걸 찾기보다 고통을 피하는 것을 우선하도록 세팅돼 있기 때문이다. 이런 방향성은 관계나 선택의 폭을 좁게 하고 결국에는 거슬리는 것만 늘어나 사는 것이 피곤해지기 쉽다.

그러니 역으로 호감의 스펙트럼을 넓혀 기분 좋은 상태를 만들려는 노력을 하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이 정도면 괜찮은데”라고 여기는 걸 많이 만들어 내서 호감의 대상을 늘려 가는 것이다. 연륜이 깊어지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인상이 좋아지는 사람은 바로 이런 게 가능한 사람들이다. 무조건 다 좋다는 무색무취가 아니다. 좋아하는 게 뚜렷하다 보니, 좋아하는 걸 받아들이는 폭이 엄청 넓어지고 관대해져 버린 것이다. 그런 사람은 여유 있고 자신이 넓어진 만큼 상대의 취향에 대해 허용적이고, 호감의 스펙트럼이 넓으니 우선 호감을 갖고 상대를 대할 수 있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그 실천으로 감자볶음을 할 때 가지를 조금 넣어 볼까 하는 상상을 해 보았다. 감자볶음을 사랑하는 만큼, 그 정도의 다양성을 받아들일 수 있을 터이니.

교육불안과 노후불안이 드디어 만나다

“이번 시험은 망쳤어요. 재수하고 싶어요. 하지만….”

올해 대학입시도 사실상 끝이 났다. 내가 만나는 많은 수험생 가운데 몇 명은 원하는 곳에 합격했지만, 더 많은 학생들은 실패를 경험했다. 평소 실력에 비해 실망스러운 대학에 합격해 낙담한 학생이 재수를 하고 싶다면서도 망설임을 드러냈다. 혹시 우울증이 있는 학생이라 자신감이 너무 떨어져서 그런 것 아닌가 싶어 재차 물어보았다. 


“저는 재수하고 싶지만 집에서는 지금 붙은 곳에 그냥 다니래요.”

옆에 있던 어머니가 말했다. “재수에 어디 한두 푼 드나요. 또 한다고 잘 된다는 보장도 없고요. 애 아빠랑 생각을 많이 해봤어요.”

아이는 재수를 원하는데 부모가 반대하는 형국이었다. 몇 년 전만 해도 반대였다. 아이는 지긋지긋해서 다시는 수험생이 되고 싶지 않아 반대를 하지만, 부모는평생을 좌우하는 것이 대학이라며 1년만 더 고생하라고 등을 떠미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재수는 필수, 삼수는 선택이라는 말까지 있었다. 실제로 60만 수험생 중에 재수생이 20만 명 정도이니, 현재까지는 재수가 대세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서울에 사는 중산층인 부모가 아이의 재수를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이가 싹수가 노래서? 아니었다. 나중에 찬찬히 속내를 들어보니 부모 자신의 노후 불안이 이런 선택을 하게 만들었다는 결론이 나왔다.

어느새 교육에 대한 투자와, 중년을 지나가는 중산층 부모의 노후에 대한 불안이 만나기 시작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교육에 대한 투자에는 아낌이 없었다. 현실감각이 무뎌지는 대표적인 영역이었다. 그러나 사교육에 대한 투자는 비용에 비해 이익을 볼 기회가 적다는 것이 서서히 판명나기 시작했다. 밑빠진 독에 물붓기 식으로 비용을 들인다고 해서 그만큼 아이의 성적이 좋아져, 더 좋은 대학에 가는 뚜렷한 효과가 확실히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더욱이 우리나라의 평균 퇴직연령은 53세로 빨라지고, 평균 수명은 80세를 돌파하기 직전이다. 돈을 벌지 못한 채 30년을 버텨야 하는 미래다. 40~50대 초반의 입시생 부모에게는 이 경제절벽이 눈앞의 불안으로 다가와 버렸다. ‘교육만이 살 길’이라는 뿌리 깊은 신념이 노후 불안이라는 큰 벽 앞에 드디어 균열의 신호가 왔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지금까지 교육개혁과 노령화시대의 노후보장의 문제는 두 개의 독립적 어젠다였다. 그런데 이번 상담을 하고 나니, 결국 맞닿아 있는 한 가지 문제임이 분명해졌다. 그리고 보니 비현실적으로 과열된 사교육과 입시문제는 의외의 방향에서 해결의 실마리가 풀릴지도 모르겠다. 자식에 대한 기대와 욕망을 투사하는 것을 참으려는 의도적 노력에 비해서, 막상 닥친 부모 자신의 노후에 대한 불안은 훨씬 강력하기 때문이다. 노후의 경제적 준비 문제는 매우 분명하고 절실하다. 행여 이런 생각을 한 번도 안 해본 부모가 있다면 냉정하게 계산기를 두드려 봐야 할 일이다. 머지않아 삶의 우선순위를 바꿔야할 선택을 해야할지 모른다.

하지현 건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https://news.joins.com/article/21312464

이 블로그는..About the blog

이 블로그는 하지현 (Jee Hyun Ha)의 블로그입니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병원 신경정신과에서 전공의와 전임의 과정을 마쳤다. Toronto General Hospital, Devision of Medical Psychiatry 및, 캐나다 토론토 정신분석연구소에서 연수했다. 2008년 한국정신분석학회 학술상을 수상했다. 현재 건국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진료를 하며, 읽고 쓰고 가르치고 있다.

오랫동안 환자들의 고민을 듣고 그 무게를 나눠 져온 하지현 교수는 가능한 한 합리적인 해법을 제시하며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해왔다. 그 과정에서 하지 않아도 될 고민으로 몸과 마음이 지치고, 중요한 결정에 앞서 너무 많은 생각 때문에 잘못된 방향으로 가거나 일상을 유지하기 힘든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누구나 삶을 사는 동안 고민거리가 없을 수 없다. 저자는 고민이 없어지기를 바라기보다 우리의 삶이 고민에 휘둘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보편적으로 적용 가능한 해법을 생각해왔다. 이 책은 우리의 뇌와 마음을 더 잘 이해하여 고민을 더 ‘잘’함으로써, 더 좋은 삶을 살기 위한 정신과 의사이자 작가인 ‘하지현식’ 해법이다.

지금까지 낸 책은

  1. 통쾌한 비즈니스 심리학 2004.4 절판
  2. 전래동화 속 비밀코드 2005.5 절판
  3. 관계의 재구성 2006.10
  4. 소통의 기술 2007.4
  5. 당신의 속마음 2007.7
  6. 도시심리학 2009.5
  7. 개같은 성질 한 방에 죽이기 2010.1 절판
  8. 심야치육식당 2011.3
  9. 소통과 공감 2011.11 (통쾌한 비즈니스 심리학 개정판)
  10. 청소년을 위한 정신의학 에세이 2012.6
  11. 사랑하기에 결코 늦지 않았다 2012.10 (심야치유식당 2)
  12. 예능력 2013.3
  13. 엄마의 빈틈이 아이를 키운다 2014.2
  14. 소통 생각의 흐름 2014.4 (소통의 기술 개정판)
  15. 그렇다면 정상입니다 2015.7
  16. 공부중독 2015.12
  17. 정신의학의 탄생 2016.1
  18. 대한민국 마음보고서 2017.2
  19. 지금 독립하는 중입니다 2017.6
  20. 불안 위에 서핑하기 2018.5
  21. 고민이 고민입니다 2019.2